'오늘이 마지막이듯' 사랑하고 기도하고 후회없이 살자

표주박의 詩作노트

징검다리

샘터 표주박 2003. 2. 1. 17:56



 





    불가에서는 옷깃만 스쳐도 전생부터 맺어진 인연이라고 가르치지만
    바람처럼 스쳐간 수많은 얼굴들, 지금쯤 어디에서 무얼하고 있을까.
    초록빛 강물로 정제된 마알간 童顔의 필름 석장.. 내 삶의 징검다리!






      필름 하나... '동생하고 놀아라' 어머니 말씀이 문턱에 걸리면 오빠는 종이비행기 접어주고 씩 웃었지. 어미닭 품속이 봄볕 보다 더 따스해 배가 고파도, 마음이 고파도 울지 않았지. 햇살 고운 언덕에서 풀꽃과 도란거릴 때 살며시 다가와 풀꽃 처럼 웃어주던 도희. 그래, 얼굴은 잊었지만 도희라고 불렀어. 가녀린 고사리손으로 이름모를 풀꽃 엮어 나는 그 목에 그는 내 목에 걸어 주었지. 한웅큼 더 뽑아 콩콩 찧어 소꿉도 하였지. 도희 엄마는 "서울 친구 사귀니 서울 말 배우겠네" 집으로 불러다 꿀맛나는 과자도 주었지. 세상에 태어나 처음 사귄 동무. 나이를 먹어도 자라지 않는 아이. 나처럼 知天命 끝자락 붙잡고 희끗해진 머리를 매만질거야. 손자 손녀도 안아 보았을 거야. 필름 둘... 휴전회담이 뭔지 유엔군이 뭔지도 모를때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를 기다리다 잠들었지. 그땐 깜깜한 들창이 참 무서웠어. 아랫집 가게에 가서 '소고기' 달라고 졸랐지. "어머니가 매일 반근씩 먹으라고 했어요" "아이고야. 반근은 우에 아노. 우째 먹을라꼬!" "콩나물 하구 물하구 고기하구 끓여요" "기특네. 잘 끓이래이" 어머니가 하시던 대로 풍로에 숯불을 피워 밥도 짓고 국도 끓였지. 입을 오무리고 후후 불다, 부채질 하다, 학교 가기 전이었으니까 7살이었을거야. 그땐 그 아줌마들이 왜 쑥덕 대는지 몰랐어. 엄마를 '어머니'라 해서 그러는 줄만 알았어. 우리남매에게 양식을 준 아줌마! 지금은 어디에서 무얼하는지. 틀림없이 만복을 누렸을 거야.
      필름 셋... 뚝섬 선착장이 없던 시절, 뉘따라 맨발로 모래 웅덩이를 건너고 나룻배 등에 업혀 한강 물살 가르니 신라의 古刹(고찰) 봉은사가 게 있더군. 양지바른 곳, 큰 伽藍(가람)을 안고 우뚝선 천왕문, 만세루 돌계단 위에 웅장한 대웅전. 관성처럼 합장을 하고 추사의 판전(板殿)을 바라다보는데.. "무얼 기원 한 줄 아니?" 귀머거리 처럼 땅만 내려다 보았지. 낡은 古書의 얼룩으로 스쳐간 전설자락이 파랑새가 관음보살의 눈동자를 그리지 못한 미완성의 무위사 후불벽화라는 걸 먼 후일, 비바람에 씻기운 초록빛 시간이 일러주더군. 미완이란 늘 아쉬움이 많은거야 삶은 늘 못다 쓴 답안지같거든.
    -표주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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