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둥과 번개 / 표주박
폭풍우 거느리고 섬광과 굉음으로 하늘을 가르고 지축을 흔들며 살아있는 절대자의 진노 머리위에 쏟아진다. 여린 잎맥에 감아올린 사연 갈피에 끼우고 걸어온 길. 발뿌리에 채인 수많은 걸림돌, 삭이지 못한 회한의 멍울까지, 겸허히 내려 놓고 닫혀진 성찰의 빗장을 풀어라. 천둥소리에 무릎을 꿇어라. 고막을 열고 가슴을 열고 동공을 열고 살아있는 바다에 육신을 던져라. 먹구름 처럼 울어라. 장대비 처럼 쏟아라. 그리고, 태초의 소리를 들으라. 모태의 소리는 물의 연주였느니라. 평화의 소리였느니라. 칠흑 같은 밤, 어둔산이라 불리우는 언덕을 오른다. 먹구름이 내려앉은 봉우리를 향해 떠밀리듯 얼마나 걸었을까 바로 머리위에서 섬광이 번쩍거리고 하늘을 찢는 굉음이 온 천지를 뒤흔든다. 어찌어찌 하다가 갈라진 바위틈에 끼어 허우적거린다. 간신히 나무뿌리를 잡았다. 온 몸에 식은 땀이 흐르고 다리가 후들거리고 가슴이 답답하다. 무너져 내린 골짜기에 걸례같은 어제가 걸려있다.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벌떡 일어난다.....악몽....... 등반 중 일 때, 혹은 들길을 걸을 때, 갑짜기 만난 천둥 번개에 의연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어디 천둥 번개뿐이랴. 거대한 자연의 위력 앞에 우리는 가장 낮은 자세로 엎드릴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편의 대로 망각하고 교만을 일삼으며 사악한 위선과 허구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고 자연의 질서를, 양심의 소리를, 거스르고 살고 있지 않은가. 거슬러 올라가면 아담과 하와로부터 수직관계가 단절된 시점, 에덴동산을 상실한 보헤미안은 주인의 자리에서 노예의 자리로 죽음을 자초한 서글프고 어두운 운명이 되었다. 섬광과 굉음으로 호령하는 천둥소리에 너도 나도 혼비백산하며 자지러지는 비굴은 수평의 관계까지 암매장한 양심에 대한 두려움이리.... "물로 씻김받고, 소리로 회심을 끌어내어, 빛으로 새옷을 입으라." 원초적 본능의 순간도, 잉태의 첫 순간도, 물과 물의 결합으로 이룬 결정체도, 양수의 바다에서 평화를 익히지 않았더냐는 깨우침이다. 보드레이는 '망각의 심연' 으로, 랭보는 '영원한 기억'으로, 릴케는 '원초의 물' 로서 바다를 노래하였지. 모순과 모순, 역과 역을 포용하는 카오스에서, 역동하는 바다... 양심의 바다에서... 고뇌의 유산이 머무는 마지막 소리를 듣자. 갈증이며 샘물인 영혼의 소리..... 태초의 소리를 기억해 내자. 그분의 원의를 건져 올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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